it-moon 님의 블로그
28화 — 지워지지 않는 청구서 본문
결제 원장 열람 권한이 없다는 문구는 세 번째에도 같았다.
문세아는 승인 요청 창을 닫았다.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성수 사옥의 현황판에는 지난밤 해외 재생량이 초록색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삭제된 시간은 그래프에서 사라졌지만, 그 시간을 운영한 돈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세아는 정산 오류 수정 메뉴를 열었다.
월별 세금계산서와 외주비 검수본은 한번 승인되면 원본을 덮어쓸 수 없었다. 금액을 고치려면 수정본을 덧붙여야 했고, 누가 언제 무엇을 바꿨는지가 남았다. 회계상 불편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세아에게는 지워진 구간을 되살리는 입구였다.
백업 호출 날짜를 한 달씩 뒤로 밀었다.
새벽 정산표에서 계정 활동이 통째로 비어 있던 날. 그날의 외주비 검수본에는 계정 관리 비용이 있었다. 자동화 운영, 해외 계정 유지, 야간 대응. 항목은 세 개였고 합계는 천팔백육십만 원이었다. 수정본에서는 모두 통합 홍보 관리비로 바뀌어 있었다.
세아는 원본과 수정본을 나란히 놓았다.
업체명과 사업자번호는 같았다. 새벽 계정을 운영한 곳도, 홍보 발주처로 적힌 곳도 하나였다.
그녀는 바로 캡처하지 않았다. 화면 캡처 기록이 보안 서버에 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숫자를 종이에 옮겨 적고, 세금계산서 식별번호만 따로 기록했다. 완성된 증거는 아니었다. 비용이 청구됐다는 사실과 실제로 계정을 조작했다는 사실 사이에는 빈칸이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이어졌다.
인공지능 가이드 제작 서버의 접속 기록. 외부 주소별 접속 목록을 펼쳐 계약업체 주소 대장과 맞추자 같은 업체명이 떴다. 대장에 적힌 사업자번호도 일치했다. 가이드 원본이 업로드된 날, 해당 업체의 주소에서 폴더가 열려 있었다.
세아는 두 화면 사이에 손가락을 댔다.
한쪽은 순위를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는 계정 비용이었다. 다른 한쪽은 창작 원본이 들어 있는 서버였다.
같은 외주망.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사업자번호가 너무 정확했다.
그렇다고 아직 반출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세아는 파일을 닫지 않은 채 백지안에게 연락했다.
* * *
“외부 감사를 요청해야 합니다.”
세아가 내민 출력물은 열두 장이었다. 백지안은 첫 장부터 끝까지 속도를 바꾸지 않고 넘겼다. 삭제된 새벽 시간대, 남은 청구서, 같은 업체, 같은 사업자번호. 마지막 장에는 인공지능 가이드 서버 접속 기록이 있었다.
“감사 전에 재산출부터 하죠.”
“무엇을요?”
“조작 의심 계정의 기여분을 전부 제거한 수치요. 해외 재생, 사전 저장, 유료 전환. 정상 이용자만 남겨서 다시 계산하세요.”
세아의 입술이 굳었다.
“그 수치가 낮으면요?”
“그때 판단하면 됩니다.”
“과거 데뷔곡도 같은 업체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안의 손이 멈췄다.
세아는 과거 자료를 가리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안에게 그 말은 정확한 날짜와 목소리를 끌어냈다.
제 이름이 빠지면 제 곡이 아닌 거잖아요.
강유림은 직접 찾아와 그렇게 말했다. 지안은 유통 조건과 홍보 물량을 표로 보여 줬다. 신인의 단독 권리는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회사 명의로 묶어야 팀 전체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반박했다. 유림이 끝내 펜을 들지 못하자 지안은 승인란에 자기 이름을 썼다.
곡은 데뷔곡이 됐다. 성공했다.
그 뒤에 붙은 권리 침해와 악성 여론은 유림 혼자 견뎠다.
마지막 전화를 받지 않은 건 끝의 한 칸이었다. 시작은 서명이었다.
“그 성공까지 허위 수치였다면,” 세아가 말했다. “당시 판단의 근거도 무너집니다.”
지안은 출력물을 내려놓았다.
아니었다. 오염된 기여분을 빼고도 성공했다면 근거는 남는다. 권리 양도 승인은 회사와 팀 전체를 위한 최선이었다. 계산에 섞인 잡음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지, 선택의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입증하면 됐다.
지안은 세 가지 안을 적었다.
외주 계약 유지.
즉시 중단.
내부 검증 후 유지.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숫자가 시야를 덮었다.
움직임이 끊겼다. 손끝이 종이 위에서 굳었다.
유지했을 때의 사 개월 뒤 유료 매출, 육십이억 사천만 원.
즉시 중단, 사십칠억 팔천만 원.
내부 검증 후 유지, 칠십일억 이천만 원.
숫자는 과정 없이 떠 있었다. 누가 입을 막는지, 어떤 자료가 사라지는지, 유료 매출이 왜 늘어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큰 값만 선명했다.
일 초 뒤 지안은 눈을 깜빡였다. 관자놀이 안쪽이 늦게 조여 왔다.
“내부 검증 후 계약 유지로 갑니다.”
세아가 지안의 멈췄던 손을 봤다.
“외부 감사는요?”
“정상 수치를 먼저 확정한 뒤 요청합니다.”
“그 사이에 자료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부 검증이 필요한 겁니다.”
지안은 최고값 옆에 선을 그었다. 오염을 걷어 낸 뒤에도 남는 성공. 그것이면 과거의 서명도 달라진다. 같은 판단으로 유림을 살려 낼 수 있다면, 틀린 건 판단이 아니라 정확도였다는 뜻이었다.
“조작분만 제거하세요. 다른 변수는 섞지 말고.”
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 * *
오후 세 시 사십이 분, 보안관리실 공기는 기계가 식힌 금속 냄새가 났다.
세아는 외주사 주소가 가이드 폴더에 접속한 날짜와 사내 무선망 기록을 맞췄다. 성수 사옥에는 일치하는 기기가 없었다. 접속 지점을 연희 연습동까지 넓히자 한 대가 걸렸다.
회사 자산 번호가 없는 개인 휴대전화였다.
접속 시각은 가이드 폴더가 외주사 주소로 열린 시각과 일치했다. 기기별 통신 기록에는 같은 외주사 도메인이 남아 있었다. 사십삼 초 동안 여섯 차례.
세아는 서버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폴더 열람은 남아 있었다. 파일 목록 호출도 있었다. 그러나 내려받기와 올리기 기록은 보존 기간이 지나 잘려 있었다.
“사용자부터 특정하세요.”
뒤에서 지안이 말했다.
세아가 의자를 돌렸다.
“특정해도 전송 주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외주사입니다.”
“동시 접속은 인과가 아닙니다. 도메인 접속만으로 파일을 보냈는지, 받은 건지, 링크만 열었는지도 구분되지 않습니다.”
“기기를 확보하면 구분할 수 있겠죠.”
“공식 조사로 해야 합니다.”
“조용히 제출을 요청하세요.”
지안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외부 감사 전에 변수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작분을 뺀 정상 수치를 증명할 수 있어요.”
세아는 모니터를 돌아봤다. 지안은 기기를 증거로 보지 않았다. 아직 계산되지 않은 변수로 보고 있었다. 삭제할 수 없으면 격리하고, 격리할 수 없으면 주인을 찾으려 했다.
“증명하려는 게 정상 수치입니까, 처음 내린 판단입니까?”
지안의 시선이 세아에게 닿았다.
세아는 먼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대답은 없었다.
* * *
밤 열한 시 십삼 분, 망원 합숙집 단체방에 보안팀 공지가 올라왔다.
연희 연습동 미등록 기기 전수 조사. 개인 휴대전화 자진 제출 요청. 제출 동의 없는 잠금 해제 금지.
조라희는 알림을 읽고 화면을 껐다.
식탁 아래에는 유림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거실 카메라에 입 모양을 보이지 않으려 둘은 물잔만 내려다봤다.
“너 뭐 아는 거 있어?”
유림이 작게 물었다.
라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몰라.”
거짓말은 짧을수록 표정이 덜 필요했다.
방으로 돌아온 라희는 문을 잠갔다. 옷장 아래쪽 여행 가방을 꺼내 안감을 벌렸다. 검은 휴대전화가 양말 두 켤레 사이에 들어 있었다.
전원 단추를 누르자 빛이 얼굴을 쳤다.
압박 면담 녹음 열한 개.
가이드 제작 당시 보존한 파일 목록 스물세 개.
유림의 곡이 어디서 잘리고, 어떤 이름으로 복제되고, 누구의 지시 아래 가이드에 들어갔는지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이었다.
공지대로 제출하면 회사가 먼저 본다. 부수면 아무도 보지 못한다. 유림에게 지금 말하면 유림까지 조사선 안으로 들어온다.
라희는 삭제 화면을 열었다.
전체 선택 칸 옆에 스물세 개라는 숫자가 떴다. 손가락을 대면 전부 없어질 수 있었다. 센터 후보라는 이름을 지키기에는 그편이 간단했다.
그러나 누군가 지운 뒤에도 청구서는 남았다. 녹음도 파일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라희는 삭제를 취소했다.
휴대전화를 끄고 다시 양말 사이에 넣었다. 전원이 꺼진 검은 화면에 자기 얼굴이 잠깐 비쳤다. 잘 연기된 표정이었다.
같은 시각, 성수 사옥에서 세아가 미등록 기기의 최초 무선망 인증 기록을 불러냈다. 보존된 것은 처음 접속한 한 줄뿐이었다.
연습생 계정.
사용자 칸에 조라희의 이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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